이번 스토리는 좀 많이 애매하네

어차피 1.2 버전 스토리가 공개되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으니, 스포일러와 관계없이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거다.


최근 하던 게임들에 대한 흥미가 많이 떨어져 게임 스토리를 전혀 보지 않고 있었다. 이번 1.2 버전에 추가된 새 개척 임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번 이벤트의 선행 조건에 개척 임무가 포함되어 있어, 이벤트를 하려면 좋든 싫든 개척 임무를 진행해야 했다.

별수 있나? 봐야지.

 

새로운 스토리에 대한 흥미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라, 그동안 여러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를 줄곧 읽어보곤 했었다. 대부분 이번 이야기가 여러모로 실망스럽다는 의견이었다.

직접 해보니,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잠깐 1.0까지의 개척 임무, 그러니까 선주 「나부」에서의 이야기를 후반부만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

 

스텔라론 때문에 재생한 '불멸의 거목'이 '풍요 현록' 보스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풍요의 에이언즈, 약사를 따르는 '약왕의 비전'이라는 세력이 관련되어 있었다.

개척자 일행이 이 녀석을 겨우 처치하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정운이 뜬금없이 문자메시지를 개척자에게 보낸다. 그런데 그 내용이 심상치 않다.

 

선주는 수렵의 에이언즈, 란이 직접 보살피고 힘을 내려주는 세력이다. 그리고 선주의 숙원 중 하나는 풍요의 에이언즈, 약사를 소멸시키는 것이다. 선주에서 풍요는 곧 적이다.

그런데 그 선주의 주민인 정운은 문자메시지에서 풍요의 힘에 감탄하고 풍요가 내린 '축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 생각했다. 아, 정운이 나중에 어떤 형식으로든 선주와 개척자 일행을 배신하겠구나.

 

심지어 정운이 보낸 문자메시지는 1.1 버전이 되어서야 추가된 것이다. 1.0 버전에는 풍요 현록을 잡으면 그대로 거기서 스토리가 끝났다.


이제 1.2 버전에서 추가된 제2막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약왕의 비전'은 운기군이 올 것을 예상하고, 단정사 인근의 '연단로'를 이용해 연단로 주변에 '마각의 몸'을 유발하는 성분을 포함한 안개를 깔아 두었다.

여기에 운기군이 섣불리 진입했다간 옆에 있는 동료가 마각의 몸으로 변해 서로를 공격할 수 있기에, 운기군은 더 이상 단정사에 진입하지 못하고 교전이 소강상태에 빠지게 된다.

연단로를 꺼 운기군이 단정사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개척자 일행은 연단로에 접근하게 된다.

이때 정운 역시 안개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장수종임에도 불구하고 개척자 일행과 동행하는데,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사소한 일에도 내빼는 모습을 보이던 평소 모습과 달리, 이번에는 '군령이니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리 오래 살지 않았으니 아마 괜찮을 것이다'라는 말을 하며 개척자 일행과 동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1.1 버전에서 추가된, 정운의 문자메시지가 없었더라면 '정운도 일이 심각해지니까 진지해지는구나'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문자메시지를 보고 나니 정운의 행동이 수상쩍게만 보인다.

 

연단로를 끈 후 마주친, 약왕의 비전 수장, 단우가 자기 행동의 정당성을 설파하며 개척자 일행에게 덤비지만, 금세 개척자 일행에게 제압당한다.

그런데 갑자기 단우가 '약왕의 비전은 할 일을 다 했으니, 불멸의 대군 팬틸리아는 약속을 지켜라'라는 말을 한다.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정운이 그 말을 듣더니, '이건 내 「파멸」의 미학에 어긋난다'라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더 가관이다. '선주의 내부를 분열시키려면 다른 방법을 써야겠네…'.

그때 생각했다. 옳거니! 네년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그런데 파멸의 대군? 팬틸리아? 그게 뭐지?

 

 

이미 1.1 버전 때 유출된 내용을 통해 정운의 정체가 반물질 군단 절멸의 대군, 팬틸리아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샤프트 각도로 목을 꺾는 장면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저걸 보면서 이 그림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더라…

ㅋㅋㅋㅋㅋㅋ 아니, 이걸 보고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없냐고 ㅋㅋㅋㅋㅋㅋ

저 장면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와! 샤프트 각도다!'와 '깁스 ㅋㅋㅋ' 이 두 생각밖에 없었다.

 

아무튼, 본색을 드러낸 팬틸리아가 약왕의 비전 병사들을 순식간에 반물질 군단 허졸로 바꿔버린 후 도망치자, 개척자 일행은 허졸을 모두 처치한 후, 팬틸리아가 향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불멸의 거목으로 향하게 된다.

팬틸리아가 사라질 때, 아까 힘없이 쓰러졌던 정운의 몸 역시 같이 사라졌는데, 이를 보고 웰트가 말하길, 파멸을 즐기는 팬틸리아의 성격 상, 진짜 정운은 어딘가에 아직 살아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정운이 정말 죽은 거라면 팬틸리아는 그냥 그 자리에 시체를 내버려 두고 갔을 거라고 하더라고.

 

그렇다면 대체 언제부터 팬틸리아가 정운으로 위장하고 있었던 걸까? 정운이라는 인물은 팬틸리아가 창조한 인물이 아니라, 실제 선주 주민이라고 하니 말이다.

  1. 처음 정운을 만났을 때부터
    이 경우, 팬틸리아는 변태가 아닐 수 없다. 여태 제정신으로 '으닝닝'을 말하고 다녔다는 거 아냐.
  2. 개척 임무 도중
    개척 임무 도중, 정운과 잠시 헤어진 구간이 있었다. 그때 개척자 일행을 지켜보고 있던 팬틸리아가 정운을 대체했을 수도 있다.

개척 임무에서 정운이 말한 '으닝닝'이라는 대사가 워낙 사람들의 인식에 깊게 뿌리 박혔기 때문에, 미호요가 이 이미지를 그냥 내다 버릴 것 같지는 않다.

아마 개척 임무 막바지에 진짜 정운을 구출해, 진짜 정운마저도 '으닝닝'을 말하게 하지 않을까?

내가 붕괴 3rd를 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전 작인 원신에서도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절대로 죽이지 않았으니, 아마 정운 역시 죽이지 않고 살려서 '으닝닝'을 말하게 만들 것 같다.


이다음은 단항 파트이다. 여기가 커뮤니티에서 제일 많이 의견이 갈리던 부분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난 이 부분의 이야기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항 파트의 이야기가 그리 인상 깊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앞서 있었던 정운의 목꺾기가 준 충격이 너무 커서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말해, 만약 누가 1.2 버전 개척 임무 스토리를 한 짤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난 주저 없이 위 영상을 택할 것이다.

 

가장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건 PV나 대사 등에서 줄곧 복수귀로 묘사되던 블레이드가 정작 개척 임무에서는 '분노조절잘해'로 묘사된 것이었다.

설정상, 그 장면이 아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블레이드 옆에 있던 카프카가 지속적으로 '잘 들어'라며 블레이드를 언령으로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 카프카가 개척자에게 한 말도 '잘 들어'로 시작하는 언령이었다.

하지만 그게 카프카의 언령이라는 걸 게임이 효과적으로 나타내지 못했다. 그저 대사에 노란색을 칠하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차라리 시뮬레이션 우주에서처럼, 카프카가 '잘 들어'라고 말할 때 순간적으로 거미줄이 반짝였다면 다들 '아, 카프카가 방금 무언가 했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수정되었다고 하는 지금 스토리보다, 1.1 버전 때 유출된 스토리의 흐름이 훨씬 더 매끄럽다.

블레이드에 의해 음월군의 모습을 되찾은 단항은 모든 기억을 되찾게 된다.
단항은 열차팀 친구들을 우선해 그들을 찾으러 가려했지만, 선주의 중범죄자인 블레이드와 단항(음월군)을 발견한 연경이 이들을 먼저 공격해 온다.
단항은 연경과 생사결을 벌이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연경을 말리고, 카프카 역시 언령을 두 번이나 써가며 블레이드를 강제로 진정시킨다.
하지만 연경이 경류의 기술을 쓰는 걸 보자, 블레이드가 분노에 가득 차 연경을 죽이려 들고, 그대로 블레이드와 연경이 전투를 벌인다.
연경이 블레이드에게 패한 후 내뱉는 대사로 보아, 연경은 경원에게 인정받겠다는 목표 하나 때문에 억지로 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차라리 수정 전의 이 스토리로 나왔으면 이렇게까지 욕을 먹진 않았을 것 같다.

스토리가 지금처럼 변한 이유는 다음 픽업으로 낼 음월을 띄워주기 위해서일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싸우던 블레이드와 단항이 연경을 상대로 연합해 싸우는 모습은 너무 어색해 보인다.

 

음월의 모습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백출보다는 낫다. 성능은 확실히 죽여줬다. E 세 번으로 평타를 강화한다고? 이걸 어떻게 참아?

 

팬틸리아 보스전은 많이 짜증 났다.

풍요와 엮인 보스들은 죄다 힐 관련 스킬을 들고 온다. 풍요 현록은 자힐 스킬을 들고 왔고, 약왕의 비전 수장, 단우는 아군의 최대 체력을 일시적으로 깎는다. 그리고 팬틸리아는 둘 다 쓴다. 이 빌어먹을…

스토리에서 경원을 빌려줘서 망정이지, 경원이 없었다면 절대로 깨지 못했을 난이도였다. 하, 경원을 못 뽑은 것이 이렇게 후회될 줄이야.


하지만 제일 큰 문제는 스토리의 분량이다.

팬틸리아를 잡으면 그대로 1.2 버전에서 추가된 개척 임무가 끝나버린다. 1.0 버전 때처럼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라며 스토리가 갑작스레 끝나버리는 것이다.

이번에 추가된 나부 스토리의 분량이 1.0 때 공개된 것보다 조금 적은 것 같은데, 대체 버전 하나를 건너뛸 동안 뭘 한 건지 심히 궁금해진다.

 

듣기로는, 지금 야릴로-Ⅵ의 스토리는 베타 테스트 때의 스토리와 현저히 다르다고 한다.

조금 어두운 정도로 끝나는 지금 스토리와는 달리, 베타 테스트 때의 스토리는 정말 딥다크했다고 한다. 쿠쿠리아가 브로냐를 자신의 광신도로 세뇌했다고 하던가?

하지만 난 오히려 변경 전, 베타 테스트 때의 스토리가 지금의 것보다 더 흥미진진하다고 생각된다.

1.1 버전에서 유출되었다던 1.2 버전 스토리 역시 현재 공개된 스토리와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야릴로-Ⅵ 때처럼 나부 스토리를 만들고 다시 쓰느라 버전을 하나 건너뛴 것일지도 모른다.

 

여러모로 스타레일의 선주 개척 임무는 원신의 이나즈마 마신 임무를 떠올리게 한다. 뭔가 판은 크게 벌여놓았는데, 정작 수습은 군데군데 허술한 점이 보인다.

개척자가 나중에 가서는 병풍처럼 되어 경원과 단항이 다 해 먹는 그림이 된 것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고 말이다.

좀 더 잘할 수 있었잖아. 이나즈마에서 욕을 그렇게 먹었으면 스타레일에서는 좀 달라질 때가 되지 않았나?

 

어쩌면 이게 미호요의 한계인 것일지도 모른다. 완벽한 게임이란 존재할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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