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만남의 길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치샤와 양양이다.

그런데 방랑자에게 이상한 녀석이 붙어 있었다는 걸 양양이 말해줬다고? 양양은 그 녀석을 본 적이 없었을 텐데? 그때 그 녀석은 무망자가 마지막으로 자폭하면서 내뿜은 에너지를 몽땅 흡수한 후, 방랑자 손등에 있는 성흔으로 도로 들어가 버렸거든.

설마 방랑자나 기염이 양양에게 말해준 건가?

처음 나왔을 때처럼, 방랑자 손등의 성흔에서 튀어나오는 그 녀석.

보면 볼수록 느끼는 거지만, 만지면 폭신폭신 말랑말랑할 것 같다.

어지간히 배가 고팠던 모양인지, 나오자마자 음식 냄새를 맡고 식탁 쪽으로 포로롱 날아간다.

그러고 보면, 이 녀석은 틈만 나면 배가 고프다고 했었던 것 같다. 대체 몸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기에 연비가 저렇게 나쁜 거지?

아하, 기염과 방랑자가 양양과 합류했을 때, 그 녀석 이야기를 해준 거였구나.

어느샌가 저 녀석의 이름이 '쪼꼬미'가 되었다. 뭐, '이 녀석', '저 녀석'이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낫지.

처음 금주에 왔을 때, 설지가 방랑자의 몸을 검사한 후, 방랑자 몸 안에 다른 공간이나 생물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었다.

추가적인 검사 끝에 내린 결론은, 방랑자의 성흔에서 나타난 쪼꼬미는 단말기(데이터 스테이션)에서 나온 에코와 비슷한 존재라고 한다. 에코와 쪼꼬미의 차이점이라면 데이터 스테이션을 매개체로 쓰는 에코와 달리, 쪼꼬미는 방랑자의 몸을 매개체로 쓴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탓에 설지는 크라운리스와 무망자의 에너지를 흡수한 것이 방랑자인지, 아니면 방랑자 안의 쪼꼬미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결론을 낼 수 없었다고 한다.

현재 방랑자의 몸속에는 크라운리스와 같지만 더 강력한 힘이 있다고 한다. 쪼꼬미가 에너지를 흡수하면 그 에너지가 방랑자가 원래 갖고 있던 힘과 융합하여 방랑자의 힘이 되는 구조라고 한다.

즉, 쪼꼬미는 단순히 방랑자의 몸을 매개체로 쓰는 에코가 아니라, 방랑자와 서로 에너지와 생명 상태, 감정 등을 공유하는 공생 관계라는 것이다.

양양이 들은 설명은 대략 이 정도이다.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었지만, 장주 쪽에 신기루 현상이 나타났다는 연락을 받은 설지가 급하게 떠나는 바람에 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양양이 방랑자와 쪼꼬미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쪼꼬미는 식탁에 있던 모든 음식을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고 전부 다 먹어치웠다.

대략 3인분을 먹어치운 후에야 배가 부르다는 듯이 배를 쓰다듬는 걸 보면, 이 녀석의 위장에 블랙홀이 있는 게 분명하다.

치샤가 쪼꼬미를 잡으려 하고, 그걸 쪼꼬미가 피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찍었다.

난 그냥 평범한 「에코」가 아니라, 그야말로 초초초 초강력, 초초초 초희귀한 「에코」라고!

요 녀석, 자아가 꽤 비대하구나.

하지만 설지 말로는, 쪼꼬미가 초강력한 건 아니어도 초희귀한 건 맞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도 이렇게 더 자주적이고 활동적이며, 인류의 삶에 참여하는 에코가 존재하지만, 그 수가 극히 드물어 에코 등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설지조차 그런 에코를 직접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방랑자에게 원래 잔향을 흡수하는 능력이 있었는데, 쪼꼬미를 흡수하면서 방랑자와 쪼꼬미의 기묘한 공생관계가 시작되지 않았을까 추측하는 치샤. 음… 그것도 꽤 그럴듯한데…

치샤가 쪼꼬미에게 어디서 방랑자에게 흡수된 건지 기억하냐고 묻는다. 하지만 에코는 원본 주파수의 잔향을 재구성한 것이라, 에코인 쪼꼬미에게 흡수 이전의 기억이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방랑자 역시 예전 기억을 잃어버린 터라, 쪼꼬미가 어디서 흡수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짐작 가는 이 딱 하나 있다.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그 '흰 머리인지 검은 머리인지 알 수 없는 여자'가 방랑자 앞에 서서, 방랑자 가슴팍에 손을 꽂아 넣은 다음, 방랑자 오른손에 성흔을 새겨 넣었다. 아마 그녀가 방랑자 가슴팍에 손을 꽂아 넣었을 때, 쪼꼬미를 방랑자 몸 안에 심은 게 아닐까?

기염 – 초록 머리 엄근진남 – 역시 쪼꼬미에게 어디서 방랑자에게 흡수된 건지 기억하냐고 물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쪼꼬미의 첫 기억은 북락 광야에서 있었던 일이 전부이다. 쪼꼬미는 아마 자신이 방랑자 몸속에서 계속 자고 있어서 그동안 방랑자가 겪은 일을 전혀 듣지 못한 게 아닐까 추측한다.

방랑자 몸 밖으로 나오면 금방 졸리고 배가 고파진다고 말하는 쪼꼬미. 연비가 매우 나쁜 건 줄 알았는데, 그냥 배터리 용량이 적은 거였다.

이름? 그거 먹는 거야?

쪼꼬미가 '이름'이라는 개념을 처음 들어본 걸 보며, 난 에코가 아직 세상 밖에 나오기 전에 알고 있는 '상식'이 과연 어디부터 어디까지일지 조금 궁금해졌다. 쪼꼬미 이 녀석, 말은 유창하게 잘하면서 '이름' 같은 기초적인 개념도 모른다니까?

이 녀석, 뻔뻔하기까지 하네…

자기 이름이 너무 대충 지은 이름인 것 같아 불만인 쪼꼬미가 자신에게 이름을 지어주면 보답으로 맛있는 음식을 주겠다고 하는데, 정작 그 음식은 쪼꼬미가 방랑자의 성흔에서 나오자마자 다 먹어치워 버린 지 오래다. 게다가 그 음식, 애당초 쪼꼬미의 것이 아니라 양양과 치샤가 방랑자와 함께 먹기 위해 시켜둔 음식이었다고. 게다가 "다음에라도 또 맛있는 게 생기면 제일 먼저 남겨 줄 테니까"라니…

생긴 건 참 귀여운데 왜 하는 짓은 얄밉기 그지없을까?

방랑자가 자신의 이름을 정한 게 대체 언제였더라? 아무튼 자신의 원래 이름을 기억과 함께 잃어버린 방랑자는 자신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 새로운 시작을 다짐했다고 한다. 이건 정말 처음 듣는 이야기네.

쪼꼬미는 자신도 이름을 갖고 싶다며, 기왕 지어주는 거 카리스마 있고 특이한 데다, 엄청 힘이 넘쳐 보이면서도 강력해 보이는 이름을 지어달라고 한다. 거 참 욕심 많네.

그 말을 들은 치샤가 쪼꼬미의 이름을 '천하무적 빅에코'로 짓는 게 어떠냐고 한다. 그게 싫으면 '윙스 저스티스 사도'나 '윙스 저스티스 히어로', '윙스 저스티스 협객' 같은 이름도 있다고 하는데, 쪼꼬미 말처럼 하나같이 별로다. 자식 이름을 '건담'으로 짓는 아버지를 보는 느낌이야…

방랑자가 쪼꼬미의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는 모습을 보고 '아닐 부(不)'의 발음과 비슷한 '포포'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 이름을 들은 쪼꼬미는 잠시 고민하더니, 그 이름이 좋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 아주 큰 오역이 하나 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궁금해할 수 있는데, 다른 언어에서의 '포포'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 중국어: 不(아닐 부)와 중국어 발음이 동일한 布(베 포)에 애칭을 뜻하는 阿(언덕 아)를 붙여 '아부(阿布)'
  • 일본어: 중국어 발음과 비슷한 '아부(アブ)'
  • 영어: 중국어 발음과 비슷한 '애비(Abby)'

그런데 한국어 이름만 뜬금없이 '포포'가 되어버렸다. 布의 발음이 '포'이니 근본 없는 이름은 아니지만, 뜬금없는 이름임에는 변함이 없다.

쪼꼬미의 이름을 '포포'라고 지은 이유는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중국어 발음과 유사한 이름을 붙이자니 '아부', '아비', '애비' 등 부적절한 이름밖에 나오지 않으니까. 그래서 '포포' 자체는 불만이 있어도 어쩔 수 없다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다음에 나오는 대사가 문제가 된다.

포포, 포포… 포포… 케살라? 포포라사스?

무슨 뜬금없이 '포포라사스'가 나오냐 할 수 있는데, 다른 언어에서의 해당 대사는 다음과 같다.

  • 중국어: 阿布, 阿布… 阿布… 克斯萨拉? 阿布拉克萨斯?
  • 일본어: アブ, アブ… アブラクサス? アブラクサス?
  • 영어: Hmm… Abby… Abra… Abraxas?

다른 언어에서는 명백하게 '아브락사스(阿布拉克萨斯, アブラクサス, Abraxas)'를 언급하고 있다.

Der Vogel kämpft sich aus dem Ei. Das Ei ist die Welt. Wer geboren werden will, muß eine Welt zerstören. Der Vogel fliegt zu Gott. Der Gott heißt Abraxas.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소설 「데미안」 中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와 유명해진 '아브락사스'는 영지주의에 나오는 신 중 하나이다. 여태껏 수많은 매체들이 영지주의 설정을 가져다 썼기 때문에, '아브락사스' 같은 이름은 절대 흘려보내듯 써서는 안 되는 이름이다. 그 캐릭터나 캐릭터의 특성이 아브락사스와 연관이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름이 '포포'라는 이름에 끼워 맞추기 위해 '포포라사스'라는 흉참한 이름으로 개명당했다.

 

물론 8월 초에 명조의 번역과 관련해 간담회가 열린 것은 잘 알고 있다. 거기서 말하길, '용의 별자리'나 '포포' 같은, 다른 언어의 것과 다른 번역이 향후 명조의 설정이나 스토리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중국 본사 스토리 작가의 확답을 듣고 해당 명칭을 쓰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영지주의의 신 이름이 나왔다고 해서 명조가 영지주의 설정을 쓰는 건 아니라고 했던가?

그래서 그 말을 듣고 「용의 뿔」 역시 공식에서 부르는 대로 「용의 별자리」라고 불러야 하나 생각했다. 포포는 중국어 발음을 썼다간 사회 통념상 받아들이기 힘든 이름이 되어버리니 어쩔 수 없고.

그런데 이번 1.2 버전 업데이트에 나온 '「군침이 싹도노」!' 번역을 보니, 간담회에서 했던 말은 게임 텍스트를 뒤엎고 다시 녹음하기 귀찮아서 대충 둘러댄 변명으로밖에 보이지 않더라고.

그래서 '포포'는 앞으로 '포포' 혹은 '쪼꼬미', 「용의 별자리」는 여태껏 부르던 대로 「용의 뿔」로 부르기로 했다. 공식이 뭘 알아!

양양과 치샤의 원래 의도는 쪼꼬미가 어디서 왔는지 알아내어 금희나 수호신을 기다릴 필요 없이 방랑자의 신원에 대한 단서를 얻는 것이었지만, 방랑자와 쪼꼬미 둘 다 이전 기억이 없는 탓에 쪼꼬미의 이름만 붙여주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때 양양이 쪼꼬미의 특수 능력을 기존 특수 에코들의 능력과 비교해 쪼꼬미의 출신지를 추측해 보자는 제안을 한다.

방랑자는 무망자와 싸우느라 쪼꼬미의 능력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에, 쪼꼬미에게 시범을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쪼꼬미가 힘을 모으는 것 같은데, 거기서 그냥 끝이다.

양양, 방랑자, 치샤의 표정이 '겨우 그게 전부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자신의 능력이 나오지 않자 당황한 쪼꼬미가 재도전을 외치며 다시 한번 자신의 능력을 선보이려 하지만, 아까와 똑같은 현상만 반복되었다.

설마 이 녀석의 능력이 조명인 건 아니겠지?

이게 다 컨디션이 별로여서 그런 거라며 애써 변명하는 쪼꼬미. 그래, 명식 앞에서는 분명 그 엄청난 에너지를 다 먹어치우긴 했었지. 그런데 말을 조금 잘못하는 바람에 방랑자 앞에 서서 아무것도 안 한 것으로 오해받았다.

그 당시 쪼꼬미는 계속 자고 있던 와중 어디선가 강렬하고 매혹적인 주파수 냄새가 점점 가까워져 와서, 반응할 새도 없이 나와 그걸 먹어치웠다고 한다.

어쩌면 쪼꼬미의 특수 능력은 발동하는 데에 어떤 제약이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쪼꼬미조차 그 능력을 어떻게 쓰는지 잘 모르거나.

치샤가 연구원들을 불러 모아 쪼꼬미를 연구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자, 쪼꼬미가 이미 이전에 설지가 그런 제안을 했지만, 자신은 방랑자와 계속 같이 있을 거라 거절했다고 말한다. 이 녀석, 얄밉기만 한 건 아니었군.

쪼꼬미는 방랑자에게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니, 쪼꼬미를 연구하려면 방랑자 역시 같이 갇혀 지내야 한다. 방랑자와 쪼꼬미 둘 모두가 동의한다면 모를까, 쪼꼬미의 연구를 위해 방랑자의 행동을 제한할 수는 없는 노릇.

어찌 되었건, 방랑자가 자력으로 과거의 기억을 되찾는 일은 어렵게 되었다.

결국 「용의 뿔」에게 방랑자의 과거 일을 묻는 방법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마침 명식 문제도 해결되었으니, 「용의 뿔」을 만나러 가는 데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음, 이름도 마음에 들고. 카리스마 넘치는 게, 내 이름이랑 비슷하잖아!

…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정말로?

쪼꼬미 이 녀석은 정말 치샤 말처럼 배가 밑 빠진 독인 건가… 어떻게 된 게 페이몬보다 식탐이 많은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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