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펜슈타인 시리즈는 전설이다

누가 한 말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인상 깊게 들은 말이 하나 있다.

게임에서 마음껏 죽여도 되는 적은 나치와 좀비뿐이다.

참으로 맞는 말 같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이들을 위해 방패를 들어줄 수는 없으니 말이다. 심지어 좀비라면 배은망덕하게도 자신을 위해 방패를 든 사람마저 물어 좀비로 만들 것이다.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냐면, 갑자기 울펜슈타인 시리즈가 생각나서 그렇다. 나치와 좀비 둘 다 등장하는 몇 안 되는 게임 시리즈이기도 하고.


울펜슈타인 시리즈에 포함된 게임은 많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를 주축으로 한 시리즈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를 기점으로 울펜슈타인 시리즈가 다시 조명을 받게 된 것은 맞지만, 이걸 리부트라고 할 수는 없다. 여전히 구작의 요소가 스토리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1.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
  2. 울펜슈타인
  3. 울펜슈타인: 디 올드 블러드
  4.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
  5. 울펜슈타인 2: 더 뉴 콜로서스

해당 시리즈의 게임을 연대순으로 나열하면 이렇게 된다.

 

다음 게임 역시 위 시리즈에 포함되는 게임이지만, 여기에서는 의도적으로 시리즈에서 배제했다.

  • 울펜슈타인: 영블러드
  • 울펜슈타인: 사이버파일럿
  • 울펜슈타인 2: 더 프리덤 크로니클즈

왜냐고? 일단 울펜슈타인 시리즈의 주인공인 B.J. 블라즈코윅즈가 주인공이 아닌 게임이기도 하고, 해당 게임의 설정이 다른 게임과 약간 상충하는 곳이 있어서이다.

마치 약간 다른 가지의 세계관이라고 하면 좋으려나.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 & 울펜슈타인

이 두 게임은 아직 사서 플레이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나무위키에서 게임에 대해 적은 여러 문서를 읽은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두 게임은 굉장히 재미있어 보인다. 세상에, 오버 테크롤로지와 오컬트의 조합이라고? 이건 재미가 없을 수 없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은 스팀에서 판매 중임과 동시에 소스 코드를 GPLv3로 공개했지만, 울펜슈타인은 소스 코드는커녕 스팀에 올라와 있지도 않다.

듣기로는 울펜슈타인은 유통사와 협의가 되지 않아 스팀에 올릴 수 없다고 하던데, 얼른 그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울펜슈타인이 스팀에 올라오길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의 가격은 6,000원 정도로, 매우 싼 가격이다. 나온 지 오래된 게임이니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울펜슈타인: 디 올드 블러드

머신게임즈가 만든 울펜슈타인 시리즈로서는 두 번째 게임이다.

일단 게임사의 분류로는 외전에 속하는 게임이지만, 주인공이 똑같이 B.J. 블라즈코윅즈인데다가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와도 직접적으로 스토리가 연결되는 만큼, 나는 이 작품을 외전이 아닌 정식 시리즈 작품으로 보고 있다.

 

이후의 울펜슈타인 시리즈가 오버 테크놀로지를 주로 다룬다면, 이 작품은 오컬트를 주로 다룬다. 울펜슈타인 시리즈의 양대 산맥인 오버 테크놀로지와 오컬트에서 오컬트를 담당하는 셈이다.

시간상 더 뉴 오더보다 이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46년식 무기만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 주제에 재미있는 무기가 참 많다.

특히 유탄 권총. 치트 엔진을 이용해 모든 무기의 탄창을 무한 탄창으로 만들고 놀아봤는데, 유탄 권총을 마구잡이로 난사해서 적들을 펑펑 터트리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디 올드 블러드의 트레일러는 '과거'를 강조하듯, 옛날 필름 영화에서나 볼법한 글자가 나온다. 그 글자가 약간 흐릿흐릿한 것은 덤이고.

 

아, 루디 예거. 그놈의 개 애호가.

분명 진지해야 할 보스전임에도 이 녀석이 그로기에 빠질 때마다 '오오 그레타'라며 죽은 자신의 식인 똥개를 부르짖으니, 보스전이 코미디쇼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그 녀석, 마지막에 자폭할 때도 '오오 그레타, 네 곁에 갈게'라며 죽더라.

 

루디 예거를 이야기하려면 '핫도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B.J. 블라즈코윅즈의 독일어 실력은 정말 재앙급이었던 것인지, 같이 잠입 작전을 펼치던 웨슬리는 "그냥 입 다물고 있어. 내가 알아서 다 할 테니"라고 말하질 않나, 본인 역시 잠입 직전까지도 속으로 '구텐 모르겐 구텐 모르겐, 아 젠장, 엿이나 먹으라지'라며 독일어를 연습하다 때려치우기도 했다.

그러다 검문소에서 루디 예거에게 기습 질문을 받자, 뜬금없이 "핫도그"라고 답한 B.J.

먼저 통과해 엘리베이터에서 기다리고 있던 웨슬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핫도그라고?"라고 묻고, B.J.는 "뭐라고 말해야 했다"라고 대답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루디 예거는 이때 곧바로 이들이 스파이인 것을 알아챘다고…

 

그 외에도 디 올드 블러드에는 재미있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커뮤니티에서 한때 '문법나치' 짤이라며 올라온, '낳다와 낫다의 차이'로 다투는 나치라던가, 눈앞에 좀비가 떨어져 내리자 다급하게 산탄총에 톱질하는 B.J. 라던가…

하늘의 비행선에서 좀비가 비처럼 쏟아져 내리자, B.J.가 말한 대사 역시 압권이다. "You look at that. It's raning nazis."

안타깝게도 더 뉴 오더부터는 이런 유머러스한 장면이 별로 나오지 않았다.

 

아네트와 케슬러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장면에서, 아직 한글 자막 패치가 나오지 않았을 때는 무조건 오른쪽으로 가 케슬러를 구하고 아네트를 죽게 내버려 두었다. 왼쪽으로 가면 아네트를 구할 수 있는 걸 아예 몰랐거든.

한글 자막 패치가 나오고 나서야 왼쪽에도 길이 있다는 걸 깨달은 나는 그 이후부터 왼쪽으로만 가게 되었다.

그야, 아네트가 죽게 내버려두면 나중에 선착장에서 같이 만나기로 했던 친구가 홀로 쓸쓸히 선착장에서 영원히 오지 않을 아네트를 기다리는 떨떠름한 엔딩 컷신이 나오거든.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

머신게임즈가 처음 내놓은 울펜슈타인 게임이다.

울펜슈타인 시리즈를 접한 건 이 게임이 처음이었는데, 이 트레일러를 보자마자 난 주저 없이 예약구매 버튼을 눌렀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축구 경기. 한 선수가 다른 선수에게 태클을 걸어 상처를 입힌다.

선수가 입은 부상의 정도가 그저 무릎이 살짝 까진 정도에 불과해 보였지만, 심판은 태클을 건 선수에게 페널티 카드를 내민 후,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태클을 건 선수의 머리에 대고 쏴 즉결 처형을 한다.

 

위 문단을 읽었을 때는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영상을 봤을 때 내가 느낀 충격은 정말 대단했다. '왜? 대체 왜 그런 거야?'라며 몇 번이고 영상을 돌려봤을 정도였다.

 

대충 울펜슈타인 시리즈의 설정에 기반해 추측하자면, '감히 신성한 아리아인의 몸에 생채기를 내?'라는 이유로 즉결 처형을 한 것 같다.

선수가 입은 부상이 단순한 생채기가 아니라 인대가 끊어지는 등의 부상일 수도 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즉결 처형은 충분히 미친 짓이다.

이 트레일러의 충격은 앞선 영상보다는 확연히 덜했다.

방독면을 쓴 두 군인이 에펠탑 앞의 광장을, 평화를 상징하는 꽃을 무참히 짓밟으며 뒷짐을 지고 걸어간다. 땅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직 살아있는 사람을 발견하자, 그들은 권총을 그 사람의 머리에 대고 쏜다.

뭐, 이 영상 역시 에펠탑 앞에 모여 시위를 하던 사람들에게 독가스를 살포한 후, 아직 죽지 않은 사람들을 현장에서 직접 죽이는 모습일 것이다.

이 트레일러는 '나치가 지배한 세상'이 어떤 느낌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 뉴욕에 투하되는, 하켄크로이츠가 그려진 원자 폭탄.
  • 자유의 여신상 옆에 자욱이 솟아오르는 버섯구름.
  • 타임스퀘어 대신 에펠탑에서 여인과 키스하는 나치 군인.
  • 미국 국회의사당에 걸린 나치 깃발과 그 위를 비행하는 루프트바페.
  • 비틀즈 대신 애비 로드를 걷는 나치 군인.
  • 벽화 앞에서 로봇 개에게 위협당하는 사람들.
  • 붉은 광장에서 로봇에게 짓밟히는 사람.
  • 달에 서서 나치 깃발에 대고 나치식 경례를 하는 우주인.

실제로 게임에는 여러 유명한 노래가 나치의 입맛에 맞게 수정되고 개사되어 등장한다.

울펜슈타인 세계관의 비틀즈인 '디캐퍼(Die Käfer)'가 작곡한 노래인 'Mond, Mond, Ja, Ja '는 실제로 비틀즈가 불렀던 곡은 아니지만 비틀즈의 노래에서 여러 요소를 가져온 노래다.

60년 버전과 61년 버전을 비교하면 61년 버전은 대놓고 '총통 각하를 찬양합시다'라는 프로파간다 가사로 변경되었다.

 

분명 여러 번 반복해서 플레이했던 게임이건만, 막상 스토리를 다시 떠올리려니 스토리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분명 엄청 재미있게 플레이한 게임이라 스토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을 텐데…

 

이 게임에서 명대사 하나를 꼽으라면 게임 초반, 죄 없는 장애인들을 학살하는 나치의 만행을 본 B.J. 블라즈코윅즈가 뇌 손상마저 분노로 극복하고 일어서 스테이크 칼로 나치의 멱을 따면서 내뱉은 "Nazi scum"을 꼽을 것이다.

울펜슈타인 2: 더 뉴 콜로서스

머신게임즈가 만든 울펜슈타인 시리즈는 전부 트레일러만 보고 예약 구매를 했었는데, 그건 분명 이 울펜슈타인 시리즈에 내가 거는 기대가 크다는 말일 것이다.

E3에서 잠깐 공개된, 울펜슈타인 신작의 이름이 '더 뉴 콜로서스'인 것을 알게 되자마자 매일 울펜슈타인 신작에 대해 공개된 정보가 더 있나 뒤져보았다. 그 당시에는 신작의 이름만 공개되었을 뿐, 별다른 정보가 없었을 때였는데도 말이다.

더 뉴 오더에서 여러 유명한 노래들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뜯어고친 나치는 이제 TV 프로그램마저 자신의 입맛에 맞게 개조했다.

 

'판저훈트 리젤'은 콜리 견종의 개, '래시'가 나오는 TV 프로그램의 나치 버전이다.

시트콤의 내용조차 히틀러 유겐트 복장의 형이 동생에게 초콜릿을 몰래 먹지 말라며, 조국에 대한 충성과 복종을 강조한다.

나치 군인 모양의 피규어 장난감이 출시되고, 미국 문화를 상징하는 요소로 이루어진 악당을 물리치는 나치 군인 슈퍼 히어로, '번개맨(Blizmensch)'도 나온다.

'German… or Else!'라는 TV 프로그램도 나오는데, 제목 뜻이 '독일어가 아니면 죽음을!' 이라고 한다. 여기서 수준 미달의 독일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생방송에서 즉시 군인이 끌고 간다.

쇼 도중 진행자가 "영어 폐지까지 173일 남았다"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미국의 문화뿐만 아니라 언어조차 말살하려는, 문화 말살 수준의 동화정책을 펼치고 있는 나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나치와 협력하는 KKK단을 보며 '온갖 나쁜 녀석들은 다 섞어 놓았다'라고 생각하며 예약 구매 버튼을 눌렀다.

 

휠체어를 탄 상태에서도 나치를 갈아드시는 주인공의 기백은 여전했으며, 임신한 몸으로 나치를 수류탄으로 찢어발기는 아냐의 기백 역시 만만치 않았다.

 

여기에서도 명대사를 하나 꼽을 수 있다. 시설에서 탈출하려는 나치 군인에게 총을 들이대며 한 말인 "Gun. Key. Run.". 한 마디로 '총 내려놓고 오토바이 열쇠 내놓고 이제 도망쳐라'라고 한 말인데, 그 말을 세 단어로 표현한 것이 너무 웃겼다.

 

다만 게임의 엔딩은 조금 시시했다. 프라우 엥겔이 탑승한 로봇과 대판 싸울 줄 알았는데, 절멸자를 지키던 거대 로봇 두 대가 최종 보스였다. 프라우 엥겔은 TV 토크 쇼에 나와 이야기하다가 B.J.에게 머리가 반으로 갈라져 죽었을 뿐이고.

바로 전작의 최종 보스였던 데스헤드와 비교하면 아주 초라한 최후였다.


영블러드나 사이버파일럿은 내가 사지 않았으니 말을 아낄 생각이다.

comments powered by Disq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