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몸과의 이별 - 05

평 할머니가 유리백합을 보며 "세상만사 인생무상"을 혼자 중얼거리고 있다.

응? 유리백합이 곧 시들 거란 걸 대체 어떻게 아는 걸까? 오래 살았으니 그 경험에 근거해 말하는 건가?

옛날엔 다들 유리백합이 사람의 감정을 이해한다고 믿었다고 한다.

웃음소리나 노랫소리 같은 좋은 소리가 들리면 유리백합도 잘 자라고, 유언비어 같은 안 좋은 소리가 들리면 유리백합도 빨리 시들어 버린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식물에 다정한 말을 해주면 무럭무럭 쑥쑥 잘 자라고, 험한 말을 하면 시커멓게 시들어 버린다는 유사 과학이 퍼졌던 때가 생각나게 하는 말이다.

암왕제군이 죽었다는 소식이 온 리월항에 퍼진 후, 리월항에 온갖 별의별 유언비어가 퍼졌다고 한다.

이게 우인단의 음모라고 주장하는 말도 있고, 「바닷속의 그것」이 날뛰기 시작했다는 말도 있고, 리월 칠성이 꾸민 자작극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전부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은데?

  • 우인단의 음모인가?
    절반 정도는 그렇다. 나중에 타르탈리아가 하는 걸 보면 우인단이 음모를 꾸민 것이 맞으니.
  • 「바닷속의 그것」이 날뛰는 건가?
    그렇다.
  • 리월 칠성이 꾸민 자작극이다.
    이건 나도 잘 모르겠다.

유언비어, 헛소문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잘 맞는 거 같다.

아무튼 우리가 여기 온 이유는 평 할머니에게서 「척진령」을 빌리기 위해서이다.

평 할머니가 갖고 있는 척진령은 평 할머니가 젊을 적, 친구가 몸에 지니고 다니던 것인데, 평 할머니가 그걸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니 친구가 나중에 누가 척진령을 빌리러 오면, 주저 없이 내어주라는 말과 함께 선물로 준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여러 사람이 종종 척진령을 빌리러 왔지만, 언제부턴가는 아무도 척진령을 빌리러 오지 않았다고.

 

'선율이 흐르는 밤' 이벤트에서 나온 이야기와 조합해 생각해 보면, 평 할머니가 말하는 '친구'란 암왕제군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때 평 할머니가 거짓말은 안 했네. 친구가 몸에 지니고 다니던 것이라 했지, 친구가 만들었다고 한 적은 없지 않은가. 「척진령」을 만든 건 암왕제군이 아니라 귀종이었으니.

음… 그리고 찾는 김에 집 청소도 해줄 수 있어.

뭔갈 찾는다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어디 깊숙한 곳에 처박혀 있는 걸 꺼내기 위해 온 집안을 헤집은 후, 그걸 다시 원래대로 정리하면서 겸사겸사 정리 정돈과 청소를 하는 것이다.

평 할머니의 집은 저 주전자 안에 있다고 한다.

그래, 나중에 여행자도 평 할머니에게서 속세의 주전자를 받아 노숙 생활을 일단은 끝내게 되긴 하지… 그게 언제였더라?

못 들어가! 내가 저길 어떻게 들어가?! 그리고 왜 내가 들어가야 되는데? 그냥 뚜껑 열고 보면 되잖아!?

평 할머니의 집이 주전자 안에 있다길래, 페이몬이 들어가서 보면 되겠다고 하니 페이몬이 화를 낸다.

그런데 페이몬이 말하는 게 평소보다 더 빠르게 말하는 거 같은데… 혹시 뭐 찔리는 거라도 있니?

평 할머니의 말을 듣고 주전자를 건드려 보자, 주전자에서 초록색 연기 같은 것이 나와 여행자를 감싼 후, 여행자를 주전자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응, 정말 오랜만에 오는 곳이네. 저기 저 앞에 있는 거미도 그렇고.

누가 주전자 안에 이렇게 넓은 공간이 있으리라 생각했을까.

류운차풍진군의 선계 같은 경우, 입구가 컸으니 그 안이 커도 그런가 보다 할 수 있었지만, 주전자는 정말 의외였다.

 

그런데 선계란 대체 어떤 공간인 걸까?

상식과 과학을 기반으로 생각했을 때, 그 작은 주전자 안에 이 넓은 공간을 넣는다는 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의 크기를 줄이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그러면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던 물질은 대체 어디로 갔다 돌아오는 것이란 말인가?

그래서 생각한 것이, 사실 선계 입구란 다른 공간을 잇는 포탈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지 하는 것이다. 아예 이 공간이 주전자 바깥의, 알 수 없는 공간이라면 이 모든 게 말이 되니까.

그런데 여기에 거미줄이 생길 정도면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청소를 안 한 걸까? 그냥 거미줄도 아니고, 불화살을 너덧 번 먹여야 할 정도로 튼튼한 거미줄이던데.

사람이 오가며 청소하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 평 할머니는 설마 이 선계에 오랫동안 발을 들이지 않았던 것 아닐까?

어째 거미줄이 튼튼하다 싶었는데, 원소로 만들어진 거미줄이라고 한다. 정작 그 거미줄을 짠 거미는 물리 공격을 하던데.

그건 '선율이 흐르는 밤' 이벤트를 하면 알 수 있다.

걱정 마. 나중에 우리도 하나 받으니까.

설마 이게 평 할머니의 전 재산인 건가? 굉장히 소박하네…

척진령을 회수했는데도 왜 나가는 길이 없나 궁금해했는데, 평 할머니가 출구를 열어줘야 나갈 수 있는 거였다.

제자리에서 눈을 감고 있다가 다시 뜨는 여행자.

설마 이번 선계는 그저 환상일 뿐이었고, 여행자와 페이몬은 여기 서서 꿈을 꾸고 있던 건 아니겠지?

평 할머니에게 선인이 맞냐 물어보아도,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고 어물쩍 넘어간다.

뭐, '선율이 흐르는 밤' 이벤트를 했으니 평 할머니가 선인이 확실하단 건 잘 알고 있다.

어… 그게 그렇게도 해석이 되나…?

범인을 잡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송신의례를 그르치는 건 이치에 어긋난 일이라고 말하는 평 할머니.

만약 종려가 척진령을 돌려주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장난스럽게 물어보자, 그때에는 직접 찾아가 같이 차라도 마시며 이야기하겠다고 말하는 평 할머니.

종려가 척진령을 빌려와 달라고 한 건, 범인 잡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송신의례를 하지 않는 상황을 지켜볼 수만은 없어 직접 나서는 것이라고 말한다.

종려에게 "시간 되면 와서 차나 한잔하게. 별 볼 일 없는 늙은이이지만 찻주전자 정도는 있다네."라는 말을 전해달라는 평 할머니.

 

잠깐 상황 정리를 해보자.

'선율이 흐르는 밤'에서 나온 이야기에 근거해 추측하면, 평 할머니가 척진령을 갖고 있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귀종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던 암왕제군, 류운차풍진군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여행자가 척진령을 빌리러 온 걸 보고 평 할머니는 그들 중 하나가 여행자에게 그 정보를 알려줬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류운차풍진군 등의 선인이라면 여행자를 거칠 필요 없이 척진령을 빌리러 직접 왔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자를 대신 보냈다는 건, 그 사람이 뭔가 사정이 있어 평 할머니에게 모습을 드러내기 힘들다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최근 신변에 변동이 있는 선인 중, 해당 조건을 만족하는 건 암왕제군 하나밖에 없다.

 

그러니까… 평 할머니는 암왕제군이 아직 살아있음을 벌써 눈치챈 것이 분명하다.

와, 아까 이 유리백합은 채집할 수 없게 되어 있었는데… 유리백합 2개를 꽁으로 먹었다.

이 유리백합도 내 배낭 속에서 영원토록 보존되는 걸 원할 거야, 분명.

척진령


특별히 선인을 위해 만들어진 법령이라고 한다. 그 소리는 맑고 아름다워 아주 오랫동안 울려 속세의 더러운 것들을 정화시킨다.
손에 쥐고 있으면 그 안의 생명이 느껴지는 것 같다…

척진령이 한자로 어떻게 되어 있나 찾아봤는데, 涤尘铃이라고 한다. 씻을 척, 티끌 진, 방울 령 이렇게 해서 '먼지를 씻어내는 방울'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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