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원신을 삭제했다.
가챠에서 원하는 캐릭터가 나오지 않아 꼬접하는 것이 아니고, 게임에 재미가 없어 삭제하는 것도 아니다.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내가 귀중한 재화를 소모해 가며 이 게임을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는 들지 않아서이다.
시간이란 한정된 자원이다. 그 끝은 분명 존재하지만, 언제 바닥날지 알 수 없는 재화이다.
사람마다 이유는 다르겠지만, 내가 게임을 하는 이유는 게임을 통해 즐거움이나 성취감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이다.
게임을 한다는 건 시간 외의 자원 역시 지불하게 됨을 의미한다. F2P(Free to Play) 게임을 완전 무과금으로 하지 않는 이상, 유료 게임을 구매하거나 게임 내 유료 상품을 구매하게 될테니 말이다. 따라서 긍정적인 감정을 얻기 위해 나는 시간뿐만 아니라 현금도 지불하게 된다.
오늘,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나 던져보았다.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원신에 시간과 현금을 지불했을 때, 나는 과연 예전과 같은 즐거움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을까? 곧바로 '글쎄…'라는 답변이 나왔다.
이런 결론은 보통 여러 이유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정확히 무엇무엇 때문에 이런 결론이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의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미호요는 더이상 내가 좋아하던 회사가 아니며, 원신 또한 내가 좋아하던 게임이 아니다.
원신이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미호요는 게임 내외에 대한 여러 피드백을 받아왔다. 하지만 미호요는 대다수의 피드백을 무시했으며, 그 중 일부만을 찔끔찔끔 게임에 반영해왔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피드백을 무시해 왔기에, 불만이 있긴 해도 '어쩔 수 없다'라며 스스로를 위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미호요는 BL에 관심이 있지 않은 한, 알아채기도 어려운 사안에 대해서 이례적으로 빠르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걸 보며 생각했다. 아, 미호요는 특정 이용자의 말을 듣고 싶을 때만,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듣는 회사였구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PC에 설치된 원신은 삭제했지만, 스마트폰에 설치된 원신은 아직 지우지 않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는 아직 미호요가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마트폰에 설치된 원신은 예전에 구매한 공월 기행 보상을 모두 받을 때까지 놓아두기로 했다. 만약 미호요가 반성의 모습을 보인다면 다시 원신으로 돌아가겠지만, 아니라면 스마트폰에 설치한 원신도 지울 생각이다.
추가: 결국 스마트폰에 설치한 원신도 지웠다. 이제 미호요가 만든 게임은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